지극히 개인적인 영화후기

영화 더 테이블 관람평 (김종관 감독)

with_hYo 2025. 3. 14. 13:25

더 테이블 (2017)
감독: 김종관
출연: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들의 출연으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티켓 오픈 후 바로 매진된 작품입니다.

좋아하는 배우들의 출연,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의 차기작이란 점, 그리고 스토리까지 모든 점이 흥미로운 작품이라 기대를 안고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인물의 섬세한 감정을 화면 속에 잘 담아내는 김종관 감독이 좋아하고,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그 무엇보다 단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있을법한 하루와 익숙한 감정들.

4개의 테이블에서 각자 나누는 대화들을 통해 일상적인 듯 비일상적인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줍니다.

 

 

첫 번째 테이블, 옛 연인(1) 유진&창석

꽃이 올려진 테이블에 앉은 유진(정유미)은 오래전 남자친구였던 창석(정준원)을 만나기 위해 먼저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에스프레소를 조금씩 마시는 유진과 맥주를 한 잔 가볍게 마시는 창석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이젠 배우의 삶을 사는 유진이지만 예전 남자친구를 오랜 친구처럼 얼굴 한 번 보러 왔을 뿐인데, 어느새 창석에게 유진은 그저 한 여자 연예인일 뿐인 듯 무례한 농담과 행동을 하며 그녀를 당황시킵니다. 당황하면서도 일순 포기해버린 듯한 정유미의 표정연기와 대사를 뱉어내는 말투가 '정유미 배우 실제 모습인가?'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솔직하고도 무덤덤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는 유진의 변명 하에 그 테이블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 되어버린 그들의 시간이 고요합니다.

 

작은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신 그 시간 동안 유진에게는 어떤 감정들이 생기고 변했을지.

 

 

두 번째 테이블, 사랑? 경진&민호

서로 쑥스러운 듯 마주하고 있는 경진(정은채)과 민호(전성우)은 각각 아주 가까이에 있는 카메라에 비치며, 둘 사이의 어색한 공기를 그들의 표정을 통해 잘 보여줍니다. 짧은 첫 만남 이후 수개월간 세계여행을 훌쩍 떠난 민호와 딱히 그를 기다리진 않았지만 다시 이렇게 만나 어찌할 바 모르는 경진은 민호보다 지금의 상황이 좀 더 불편해 보입니다. 풀리지 않는 대화 탓에 경진은 두 번이나 일어서 나가려 했지만 단호히 그녀를 잡는 민호 때문에 다시 앉습니다. 당혹스럽고 어색해 하는 경진의 상태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과 눈 깜빡임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카페를 나설 즈음엔 두 사람이 함께 민호의 집으로 향하며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며 골목을 나섭니다.

 

애매한 감정들이 명확한 감정으로 변했을까, 아니면 또다시 어색한 순간이 될 새로운 시간이었을까.

 

 

세 번째 테이블, 가짜모녀 은희&숙자

특이한 관계인 듯한 두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있습니다.

사랑을 제외한 모든 것이 거짓인 결혼을 하려는 은희(한예리)와 그 결혼의 어머니 역할을 하기 위해 돈을 받고 연기할 숙자(김혜옥)가 덤덤한 분위기 속에서 거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테이블이 특이한 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동성 간의 이야기인데다가, 감독의 전작 [최악의 하루]에서 '은희'로 출연했던 한예리 배우가 다시 '은희'로 그 테이블에 앉아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은희인 듯합니다. 

 

인생의 탈출구 혹은 꽃길을 위해 사랑을 이용하려 했던 은희가 진짜 사랑을 만나 결혼을 위해 숙자와 함께 거짓 결혼식을 설계합니다. 대부분의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결혼을 하지만 은희는 그저 행복하고 싶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예리의 뻔뻔하고도 과장 없는 담담한 연기, 그리고 자신감 넘치고 올곧은 목소리는 이 작품에서의 '은희'와 김종관 감독의 영화 세계관 속의 '은희'를 그 누구보다 매력 있게 표현합니다. 최악의 하루하루를 지내오던 은희에게 이젠 행복이 찾아올까요?

 

마지막 테이블, 옛 연인(2) 혜경&운철

어두워진 카페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혜경(임수정)과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운철(연우진)의 테이블은 어둑어둑해진 창밖만큼이나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곧 결혼하는 혜경은 옛 남자친구 운철에게 결혼을 하고서도 만나는 사이로 지내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혜경은 제안을 거절하는 운철을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봅니다. 접점을 찾지 못하고 어두운 밤 둘은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집니다.

 

혜경이 혼잣말하듯 운철에게 말하는 대사가

영화를 본 후에도 참 오래토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랑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혜경에게 운철은 어떤 남자였을까

운철에게 혜경은 어떤 여자로 기억될까

 

 

지극히 개인적인 hYo Review

카페의 큰 창 옆에 있는 낮은 테이블과 시간대 별로 4명의 여자 배우들이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영화는 잔잔한 단편 소설집 같은 옴니버스 식 영화입니다. 몇 안 되는 영화 속 인물들이 큰 스크린에서 멀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관객을 붙잡습니다.

 

꾸준히 나타나는 카페 주인과 다른 테이블의 손님의 움직임조차 카페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시간의 흐름마저 보여줍니다.
작은 꽃이 담긴 컵이 있는 창가의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하루 속 다양한 만남 속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이런 대화들이 극적인 드라마나 먼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라는 점이 상기되면서 각자의 이야기가 서서히 관객에게 스며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테이블 위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한 줄 리뷰

마음이 앉았다 사라지는 곳, 그 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