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2018)
Microhabitat
감독: 전고운
출연: 이솜 안재홍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던 전고운 감독의 첫 장편 영화입니다.
배우 이솜과 안재홍의 조합이라니, 이 조합이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부산국제영화제 티켓팅이 오픈되는 순간 바로 예매 리스트의 상위권에 올리고 시도 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두 배우의 만남보다도 어쩌면 시놉시스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하우스메이드, 소위 파출부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젊은 미혼 여성이라니. 아니, 어쩌면 '청년백수 120만 명'이라는 요즘이라 가능한 콘셉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놉시스와 출연진에게 끌려 선택한 이 영화는 정말 흥미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캐릭터 '미소'뿐만 아니라, 배우 이솜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 두 배우는 2024년 전고운 감독이 연출한 티빙 드라마 [LTNS]에서 상대역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집'보다 위스키 & 담배
허름한 옷차림에 흰 새치머리가 가득한 31살의 미소는 하우스 메이드 일을 주업으로 살아가는 여성입니다. 주로 매춘 여성의 오피스텔 집안일을 하며 일당을 받아 생활합니다. 의식주는 포기해도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만은 포기할 수 없다며 하루하루 근근이 생활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담뱃값이 2000원이나 오르면서 미소의 생활비에 큰 타격이 오게 되고, 미소는 결국 방 보증금을 빼고 의식주에서 ‘주’가 없는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집이 없어진 미소는 20대 시절 밴드 생활을 함께한 멤버들을 찾아가 하루씩 숙박을 부탁하고 제공받습니다. 영화는 미소의 특기인 '집안일'과 '잘 공간'을 상호 교환한 미소가 밴드 멤버 한 명 한 명의 일상 속에 들어가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미소의 삶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저마다 다르면서 결국 같은 삶
키보드를 치던 멤버는 시부모님을 모시며 능력 없는 남편의 뒷바라지하기 바빠 자신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채 살아가고 있고, 결혼한 지 1년도 안되어 이혼당한 남자 후배는 대출로 어렵게 산 아파트를 떠나지도 못한 채 매일 밤 술로 아내를 그리워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부잣집에서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고용하는 여자 선배는 남는 방이 많다며 비교적 오랜 기간 미소에게 숙박을 제공해 주지만, 나중엔 미소에게 되려 눈치 없이 오래 머문다며 화를 내며 핀잔을 주어 결국 미소는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그 후 마지못해 도움을 청했던 노총각 선배는 부모님께 예비신부를 소개하듯 미소를 소개해 주어 미소는 약간 불편한 느낌을 받지만 일단 갈 곳이 없기에 그곳에 묵기로 합니다. 하지만 숙박을 제공받은 다음날 노총각 선배는 미소를 집 밖으로 못 나가게끔 가두고 같이 살자는 어이없는 협박을 하고, 결국 미소는 어렵사리 그 집을 도망쳐 나옵니다.
집이 없고 돈이 부족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미소는 변함없이 담배를 피우고, 좋아하는 바에 가서 위스키를 꼭 한 잔 마시고, 남자친구를 만납니다. 어느 날 남자친구는 생명수당이 나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해외근무지에 지원하고 합격하게 됩니다. 2년간 해외로 떠나게 되어 미소는 너무 안타깝고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보냅니다. 그를 기다린 2년 후에도 미소는 변함없는 옷차림과 입에 문 담배 그리고 메이드의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hYo Review
이 영화에서 시놉시스 외에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각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으로 숨 쉬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 밴드 멤버 캐릭터의 특색뿐만 아니라 각 캐릭터와 미소의 1:1 케미도 정말 좋아서 영화 속 또 다른 미니 스토리 자체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멤버 캐릭터를 연기한 김재화, 최덕문, 이성욱 배우들은 소공녀 이후 더 많은 작품들 속에서 만난 듯한데, 이 영화에서 정말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어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특히 갑자기 찾아온 후배인 미소를 부모님에게 결혼 상대자로 소개하고 다음날 집 안의 문을 봉쇄하여 미소가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만든 록이(최덕문 배우)와의 에피소드는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지만, 공포스럽고 강압적이게 그리지는 않아서 피식하고 웃고 넘길 수 있어 관객으로서 유쾌했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 집에 얹혀서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가끔 핀잔도 받지만 담배와 위스키, 남자친구만 있으면 괜찮다고 말하고 살아가는 미소를 보며 정해진 삶이란 뭘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저도 20대 후반 불안과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었던 때라, 미소에 나 자신을 많이 투영해 봤던 것 같습니다.
나는 미소처럼 살 수 있을까?
타인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굳건하게 본인 나름대로의 철학과 취향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미소가 만나는 매춘 여성이나 밴드 멤버들은 안정된 직업과 집 없이 짐을 끌고 하루하루 숙박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미소를 부족하고 특이하게 보지만, 사실 미소의 삶은 멀리서 바라보면 지금의 한국 20-30대 청춘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감독이 이 사회에게, 지금의 청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였을 듯합니다. 집이 없어도 위스키, 담배와 같은 확실한 취향을 갖고 본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메이드 일을 하는 미소를 통해 현재의 생활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 힘든 지금의 청년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사회에 던지는 작은 신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불안한 삶 속에서도 내 취향을 유지해도 괜찮다고 감독에게 존중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미소에게 위로받았습니다.
한 줄 리뷰
세상의 많은 '미소'들을 위로해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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